작성자 박성희 17-11-27 09:26 조회11회 댓글0건
박 성 희/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디선가 그의 향기가 났다.
 나는 신발을 벗고 숨을 고르며 발걸음을 옮겼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모르게 두리번대며 그의 자취를 찾았다.
  저녁이었다. 탄자부르에 있는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에 도달한 시간은. 평온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숭고한 아름다움에 젖었다. 좋았다. 너무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푸자(기원)하는 사람들의 주문소리 조차 감미로웠다.
  ‘당신 같은 여자에게 정을 주고 싶었어.’라고 말하고 미국 유학을 떠난 사람. 그가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알려준 사원. 그의 부드럽고 로맨틱한 감성처럼 닮아 있다. 
  나는 아름답게 조각된 2개의 육중한 고푸람(문)을 지나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인도에서 가장 큰 난디(소)상을 보고 천천히 사원 내부를 돌았다. 내 눈길, 내 발길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들이 신기했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과 신의 합작품인지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새로 지은 것처럼 완벽하고도 깨끗했다.
  그는 시내 유명병원에서 카 라고 불리는 젊은 의사였다. 인도인 같지 않게 정직하고 약속을 잘 지키며 순수함을 간직한 멋있는 사람이었다. 
  1010년 촐라왕국 왕중의 왕 라자라자 1세가 건축한 이 힌두사원은 시바신을 모시고, 드라비다 양식의(남인도) 대표적 건물로 비나마(본당) 위에 높이 60m의 피라미드 모양의 탑과 화강암으로 건축된 세계 문화유산이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마다 그는 내 엉터리 영어를 알아듣고 정확한 영문법을 가르쳐주었고, 자기가 다녀본 아름다운 장소들을 소상히 알려주었으며 수많은 내 질문에 정성껏 답해 주곤 했다. 
  나는 조신하게 발걸음을 옮겨 비나마 안으로 들어갔다. 힌두교도들이 길게 줄을 서서 나도 그들처럼 줄을 섰다. 시바신의 링감(남근)을 만나기 위해서다. 높이 4m, 둘레 7m나 되는 검은색의 거대한 링감이 위력 있게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얼른 머리를 조아리고 소원을 빌었다.
  그는 늘 선생 같은 사람, 안내자 같은 사람이었다. 때로는 시인, 철학자, 여행자 같았으며 박학다식 했다.
  본당 우측에도 250개의 링감이 요니(여근)위에 쭉 안치돼있다. 나는 1007년 전 지어진 사원의 냄새와 빛깔과 촐라왕국의 역사를 온몸으로 향유하며 가로 120m, 세로 240m 이중의 성벽으로 만들어진 사원을 둘러보며 회랑을 걸었다. 
  그는 브라만 계급에 부잣집 자식 같았다. 생김새와 말투, 내뿜는 분위기가 그랬다. 이야기를 나눌 땐 여느 사람처럼 흐트러지거나 야릇한 농담을 하거나 예의에 어긋난 적이 없었다. 
 
  성소 꼭대기 20층 높이의 피라미드 모양 탑 위에 세워진 시카라(첨탑)를 본다. 단일 바위에 다양한 모양이 정교하게 조각 된 탑의 무게만 81톤이라니. 촐라 왕조의 부유했던 왕권을 볼 수 있다.
  내일은 그가 알려준 근처 서포지 사라스바티 궁전과 그 안에 있는 도서관과 로얄 팰리스와 아트 박물관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티루치라팔리와 쿰바코남의 유명한 사원들을 더 보고, 다음날엔 폰디체리의 오르빌 공동체 마을까지 둘러볼 요량이다.
  어스름이 하늘에 검푸른 빛이 돌고 하나 둘 별이 뜨니 시카라에도 하나 둘 불빛이 켜진다. 사원은 금방 동화 속의 아름다운 성으로 둔갑을 한다. 나는 난디가 있는 광장 계단에 앉아 푸자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모두들 바나나 잎 위에 꽃과 과일을 올리고 디야스(등불)에 불을 밝혀서 저마다 소원을 빌고 있다.
  잔잔한 바람, 향내, 기도소리, 부드러운 화강암의 감촉. 편안하고 아늑하다. 감정이 따뜻하고 다정했던 그를 만난 것 같다.
  나는 본당에서 시바신이 하사한 꽃과 끈으로 된 빨간 팔찌와 빈디 가루를 만지작거리며 브리하디스와라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신비하고도 고적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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