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사람들의 문화와 삶의 질이 높은 것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부터다. 십 일 년 전 한국 세종문화회관에서 17개국 화가들의 미술전시회가 있었다. 초청받은 미국 화가중 가까이 지내는 에리카는 한국에 가기 전부터 한국의 역사, 지리 및 문화에 관해 공부를 많이 해 왔다. 태극기에 관한 지식이나 청계천의 변천까지 어느 것은 나 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 혀를 내 두를 정도다. 그녀는 이 처럼 처음 가는 나라에 대해 사전 지식을 듬뿍 가져간다. 어디 그 뿐인가, 여행지에 돌아와 일주일 정도 지나면 어김없이 한 뭉치 여행일지를 내게 보내온다. 내 기억이 가물거릴 때 그녀가 보내준 메일을 뒤져보면 상세한 정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퍽 도움이 된다. 이렇게 그녀를 통해 배우며 도전받은 덕분에 나도 십 년 전 미술전시회가 있어 처음 가본 벨지움 브뤼셀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에리카의 부지런 한 학구열 못지않게 남에게 폐를 될 수 있는 한 안주려고 노력하는 프랑스인 화가 미라이가있다. 미국있는 때 어느 해 여름 이곳에서 있는 전시회 일로 우리 집에서 2주 동안 머물렀는데 인터넷으로 미국 우표를 미리 우리 집 주소로 주문해 놓고와서 그녀가 우리집에 당도한 다음날 주문한 우표가 배달되는 것을 보았다. 돈으로 따지면 몇 불 안되지만 내게 우표 몇 장 이라도 신세 지지 않으려고 했다. 어디 그뿐인가 대중 교통이 불편한 미국 생활을 직감하고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볼일을 보았다. 내가 교통편을 제공해준다해도 “이게 더 편하다.”며 싱긋 웃는다. 한 번도 버스를 타 보지 않아 나도 모르는 버스길을 그녀는 인터넷으로 척척 알아내더니 떠날 때 까지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내다 갔다. 육체의 고단함이나 먹는 것에 치우치지 않고 힘들게 온 여행이니 어떻하던지 자기 나라에 없는 문화재들을 하나라도 더 보고 가려고 박물관을 두루 다니며 즐거워했다. 도착하여 공항에서부터 떠나는 날 까지 일일이 교통편을 제공해주어야하며 아울렛 데리고 가는 것은 기본이고 종일 함께 친구되어 주어야하는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과는 많은 차이를 느끼게 했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방송국에 일하는 혼자사는 남자 분 아파트에서 남편과 함께 하룻 밤 묵은 적이 있다. 그의 아파트는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지역으로 별로 깨끗한 지역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없고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미국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낡고 때 묻은 카펫에 발을 내딛으며 “아이쿠, 오늘 밤 된통 고생하겠구나.”며 실망 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나의 염려는 몇 분 후 그의 작은 베츌러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거실 안에는 어떻게 이 좁은 문으로 들어왔을까 싶을 만큼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 한대가 위엄 있게 놓여있었고 벽 한 면을 다 차지한 오래된 유화 한 점이 걸려있었다. 의자나 침대 어느 것 하나 변변치 못하게 살면서도 이처럼 예술을 사랑하는 그 남자를 다시 한 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자로 살지 않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당당하고 소신껏 살아가고 있는 에리카나 미라이 또 이 방송인이 사는 모습, 이것이 바로 그들의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유럽 전시가 있을 때는 몇 달 전부터 사전 정보가 계속 전자우편으로 들어온다. 개최되는 지역의 지도는 기본이고 일정표와 그 달의 평균날씨등 화가들이 거하는 동안 필요한 정보를 떠나기 전에 꼭 보내준다. 매일 일정표를 보고 움직이니 우왕좌왕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전시회 때마다 아는 얼굴들이 많다. 이들은 만나면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새로운 그림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용기를 북돋아준다. 또 저녁에는 함께 어우러져 각기 자기 나라의 노래를 선보이고 춤을 추며 신나게 놀지만 남을 시기하고 헐 뜻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다. 


물질 만능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우리는 안다. 물질의 부요로 남을 측정하지 않으며 삶의 한 순간도 소홀히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이 선진국의 자리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많이 지니고 살아가는 그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