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샤 리 수필가, 화가/빅토리아문학회 회원

새해 첫 날 교회에서 떡국을 먹었다. 교회 드문드문 나오는 성도가 돈을내고 내가 떡국 요리를 맡아주기로 했다. 떡국에는 시원한 동치미가 제격이지만 동치미 무우를 구하기가 힘든 이곳 빅토리아에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다행히 내가 만드는 김치는 거의 셀러드 식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좋아하며 모든 이들이 즐겨 먹는다.

내가 첫 이민간 곳은 앨버타주 에드먼턴이라는 도시다. 그곳은 6 개월 동안 눈에 덮여 살아야하는 추운 지방이어서 밭에서 야채를 기르는 일은 상상도 못 한다. 한국식품점도 따로 없었기에 배추나 무 또한 구할 수 없었다. 양념은 한국에서 부쳐와야 했고 양배추로 대강 김치 흉내를 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익기가 무섭게 다 없어지곤 했으니 요즈음 생각하면 참 아득하고 힘든 세월이었다.

이민 오기 전에는 시어머님께서 늘 담가주셔서 어려움을 몰랐고 막연히 나도 나중에 쉽게 담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리책에 김치 담그는 다양한 비법이 나와있지만 실지로 담가보면 재료나 절이는 시간에 따라서 혹은 배추의 품종에 따라 맛이 영 틀려지기가 일수다. 절여지는 정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때론 너무절여 볼품이 없는가 하면, 덜 절여져서 밭으로 도망갈 모양을 할 때도 있다. 우리 음식이 재료의 계량방법이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경험에 의해 짐작으로 적당히 만드는 음식인데 특히 김치는 더욱더 그런 것 같다. 기대 했던 김치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그 허무한 마음을 주부들은 모두들 겪어보았을 것이다. 한때는 김치 담그기를 포기하고 사 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같은 양이라도 이상하게도 집에서 담가 먹는 김치는 오래 먹는데 사다먹는 것은 금방 바닥이 나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어느 날 나는 김치를 정복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외식할 때마다 그 식당 김치가 맛있으면 주인에게 애교 섞인 말로 비법을 묻곤하는데 대부분 자기집 노하우를 조금씩은 가르쳐주곤 한다. L.A.에 있는 A 식당 김치는 국물이 전혀 없는데 항상 담백한 맛이 나고 감칠맛이 난다. 그 집에는 젓갈류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주인은 말한다. 또 밸리에 있는 H 식당은 푸른 잎사귀만 절인 김친데 쿵쿵한 냄새를 약간 풍기면서도 옛날 할머니의 손맛 같은 향수를 느끼게 한다. 그 집의 비결은 주인이 직접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기 손을 꾹꾹 눌러 김치가 익을 때까지 정성을 쏟는다고 알려준다. 그 외에도 우선 간을 잘 맞추는 것이 최고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나도 그 동안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연구한 우리집 김치비법이있다. 우선 배추를 알맞게 절여야한다. 절인 배추를 반으로 꺾어봐서 부드럽게 꺾이면 잘 절여진 것이다. 나는 배추 절이는 시간을 그리 많이 잡지 않는다. 배추를 절여놓고 그 동안 양념을 준비하는데 마늘은 언제나 까놓은 것보다 직접 까서쓴다. 찹쌀풀과 빨간 피망과 양파도 갈아넣는다.

빅토리아로 이사 와서는 생 새우를 살 기회가 있어서 많이 사 얼려 놓고 김치 만들 때 듬쭉 갈아 넣는다. 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육개월동안 숙성시킨 새우젓도 한 몫한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생 과일 서 너 가지는 필수다. 나는 주로 국물을 흥건하게 만드는데 잘 익으면 국물 맛이 칼칼하고 시원해 국수말이 및 물 냉면으로도 일품이다.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은 물론 가족을 위한 아름다운 마음과 정성을 조미료로 하면 틀림없이 매번 성공한다. 일단은 조금 싱겁게 담그고 다음 날 간을 본 후 제 정리한다. 겨울에는 집 안에서 이틀 쯤 놓았다가 얼추 익었다 싶으면 김치 냉장고로 이동하고 여름에는 하룻만에 김치냉장고로 옮겨야 한다.

이번 성탄절에 사돈댁에서 잠을 잤는데 며느리 오빠가 김치 가져왔냐고 물어왔다. 아들녀석의 말에 내가 김치를 가져가면 장인과 며느리 오빠와 싸움이 벌어진다고 한다. 며느리 오빠는 김치를 통 채로 갖다놓고 무슨 간식 먹듯이 시도때도 없이 먹기 때문에 집안이 온통 김치 냄새로 오염되기 때문이란다. 멀리 사는 사위는 내가 딸네를 방문하면 꼭 김치 만들어 놓고 가라고 부탁한다.

곧 칠십을 바라보는 내 나이니 김치 연습은 어지간히 한 것 같지만 그래도 김치를 담글 때 마다 설레이고 걱정도 된다.
“이번에도 실패 없이 김치가 잘 담궈질까?” 한국 요리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