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꿈을 이틀동안 꾸었다.

돌아가신지가 15년 됐는데 그 동안 한번도 엄마 꿈을꾸지 못했는데 연 이틀을 꾸다니.

그저께 밤에는 엄마의 소리가 곁에서 들렸고 내용은 기억이 없다.

간밤 꿈은 엄마가 나로부터 멀찍이 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아주 단정한 옷 차림으로

엄마의 45세 쯤 되어보이는 청순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나를 아주 평화롭게 바라보셨고

말씀은 없으셨다. 꿈을깨고나니 뭔지 모르게 기분이 상쾌하다.


샵에 일 나가서도 걸음이 가볍다. 왜지? 혼자서 랄랄랄랄 노래를 부르면서 일 한다.

아침 단골 손님이 들어오는데 한국말로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한다.

작년에 그 분을 만났을때 자기를 "I am a 목사님"이라고 소개해서 한 참 웃었다.

알고보니 오래전에 밴쿠버에서 한인교회내에 청년부 목사로 시무 한적이 있단다. 

한국 사람들만 보면 반갑고 각별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 한다. 


언제나 똑같은 샌드위치를 먹는 그 은퇴 목사님이 내게 뜬금없이 "그동안 부모님한테 

잘했어요? 제 5계명을 잘 지켰냐구요?" 라 묻는다. 갑자기 받는 질문에 어리둥절했지만 

"그럼요. 잘 해 드렸습니다." 부족하나마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지요.

"그럼 당신의 생명은 보장 받았수다. "

"네에?"

"성경에 부모 잘 모시면 장수한다고 말 했잖아요?" 하면서 크게 웃는다.

"아, 네~" 그제야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함께 웃었다.


오늘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는것은 이 틀동안의 내 꿈과 연결고리가 있다.

삼 일 전 미국 여조카와 수다를 떨면서 내 유년시절의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며 아픔을 나누었는데 조카말이 "이모도 카운슬러 한번 받아보시면 어때요?"라 

말 했다. 자기도 좋은 카운슬러를 만나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해 나도 기회잡아 한번 그래 볼까 생각했었다. 

그런 대화를 한 그 다음날 바로 엄마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엄마로 향한 쓴 뿌리를 완전히 뽑지 못하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신 엄마가

이 틀 연이여 나타나 고운 자태를 보여 주시면서 나를 위로하셨음이 틀림없다.

"얘야, 나 엄마야 여기 좋은 곳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어. 육신의 아픔을 견디고 나면 더

튼튼한 몸을 부여 받듯이 마음의 아픔도 잘 겪어 나간 너기에 지금 너를 만들 수 있지

않았겠니? 엄마를 이해해 주겠니? 그때는 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을. 미안하다."


엄마는 내게 이 말을 전하고 싶으셔서 꿈속에 찾아오신거다. 

가끔씩 윽~ 하고 나를 울게 만드는 것들의 잔재를 부셔 버리려고.


가여운 엄마, 홀로 자식들 키우시느라 힘들어 내게 마구 퍼부었던 잔소리도

게으름을 용서못해 닥달하던 엄마의 나름 스파르타식 교육도 다 나를 위한 것이었거늘.


엄마를 다시 만나면 내가 엄마를 꼬옥 안아드리리라. 

아니 내가 엄마품에 마구 딩굴며 안기리라.

"엄마, 오케이 오케이입니다. 우리 모두 승리했어요. 나 카운슬러 필요없어요. 

다 해결됐네요. 흐 흐 흐"


아일랜드 이야기를 쓸 때 마다 마지막은 언제나 황홀한 스트라이크로 끝 난다.

이게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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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는 프랭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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