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중매쟁이

2014.04.06 21:38

엘리샤리 Views:855

30년은 되었을 이야기이다.
아빠는 금세공업을 가업으로 이어가는 금은방집의 주인이었다.
품성이 아주 온화하고 재미있는 분이라서 5일장을 나온 사람들은 아빠의 가게에 들러 물이라도 한잔씩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때로는 산나물을 파느라 끼니를 놓친 시골댁에게 삶은 감자를 제공하는 휴식처이기도 했다. 석유난로로 불피우던 시절이라 철판 위에 노란콩이나 땅콩을 튀겨먹기에 좋아서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둘러앉아 뜨거워 꿈틀거리는 것을 새참 삼아 나눠 먹었다. 곧 면식을 익힌 처지가 되면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장통 소동에 대한 목격담까지 한바탕 재미있는 하루를 나눈다.  아빠는 진열장 위로 몸을 숙이고 사람들이 앉은 쪽에 대고, “아 그래요.” , “이런, 이런.”, “아이고.” 하며 오가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추임새를 넣곤 하셨다.
우리식구가 거처하는 집은 금방문을 통해서 들어가는데, 그때 오가면서 내가 엿 들은 이야기만 해도 5톤트럭에 한가득 될 성 싶다.
 
장날만 되면 항상 앉아있는 유명한 중매쟁이가 하나 있었다. 나이가 70을 바라본다는 그 동로할미는 감긴듯한 부은 눈두덩이에 항상 올라가있는 입꼬리를 가진 특이한 외모로, 항상 시장통 입구 우체국앞 계단에 난전을 폈다. 실눈을 뜨고 앉아있으면 아무리 나물보따리가 앞에 있어도 그 할미는 사주팔자 점치는 영매한 사람처럼 보였다.
장보러 나온 사람들이 기웃거리면 장사는 뒷전이고 집안에 처녀총각이 있는지 꼬치꼬치 신상을 캐묻는데, 때로는 자진해서 연락처를 남기를 사람들도 있었다. 속 썩히는 노처녀 노총각이나 소박맞은 자식이 집에 박혀있으면 참으로 갑갑하여 거저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동로할미 중매를 학수고대 하는 것이다.  할미는 연락 줄꾸마 하고 받은 전화번호를 쥐어 들고 아빠의 가게로 쪼르르 와서 읊는다. 희안하게도 그 할미는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 보통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한번 들은 사람의 신상을 한줄 빼지않고 좔좔 외워서 아빠에게 라듸오방송처럼 틀어댄다.
그러면 아빠는 쓰는 속도보다 빠른 할미말고삐를 종종 당겨 세우고 또박또박 써내려 가신다.  그 할미가 이거 썼어요? 저거 썼어요? 하며 확인을 하기 때문에 받아쓰는 입장에서 할미를 보면 가관이라 그 상황은 참으로 재미있어 보였다.
아빠가 이 와중에 아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이 어디 있었는데 하면서 장부를 뒤적이면 그 할미는 누구, 그 처자는 동로 교감댁 앞장에 안써놨능교? 하면서 장부 앞쪽인지 뒤쪽인지 기록한 사람보다 더 귀신같이 알고 말하는 것이 정말로 신기했다.
아빠의 중매장부는 그 쪽머리 오지랖넓은 할미가 읽을줄도 쓸줄도 모르기 때문에 대필로 정리해주면서 시작되었다.
 스마트폰도 없었고 메일도 없었고 집전화나 한대씩 귀하게 모시고 있던 시절이라 이 저차, 저 처자, 그 총각, 혹은 어느홀아비 모두 물어오는 제비마냥 5일장이 설 때면 빠지지 않고 출근하는데, 저 이 빠진 할머니가 진짜 중매를 잘 설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의심이 들었다.
당시 나는 막 중학교를 들어갔으니 나를 처자로 안보았겠지만 앞가르마 가른 그 중매할미는 눈이 그렁그렁 예쁜 고등학생 언니를 꽤나 탐 내었다.
이런사람과 이런사람은 잘 어울린다.  4살차이는 선 안보고 결혼해도 잘 산다안했나. 그 총각 병진년 띠네 그 나이되도록 왜 장가를 안갔노. 공부하느라 바빠 그랬재 직장다니고 돈버느라 아가씨가 없었재. 어느 처자든 오기만 하면 걱정없다 반듯한 직장있겠다 집 장만해놨겠다 하며 거든다. 당사자가 내세울 것이 그닥 없으면 먼 친척이라도 얼굴 세우는데 한자리된다.
산북 사는 그 처녀 사촌오빠가 사법고시 1차붙었고 오촌당숙이 우매골 저자거리에서 한약방 안하능교, 처자는 지금 집에서 아버지 배농사 같이 한다고하데. 작년 농사 잘됐다카던데 올해는 가을 가 봐야지 아직 모르재, 그 처자 일 참 잘하는구맨. 그럼 이래 맞춰보면 되겠자 하며 얼굴도 안본 처녀총각의 중매를 말로 다 한다. 탁상공론 후에는 중신할미 보는 데서 아빠가 양쪽 집에 전화를 하고 선 볼 날을 다음 장날로 약속 잡는다. 당시에 이미 45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금방을 꾸려나가시는 아빠는 온 동네가 신뢰하는 유지였기 때문에 삼광당에서 온 중신전화라고 하면 시간을 모두 내주는 편이었다.  중신할매는 이 때문에 아빠에게 중매장부를 맡겼을 것이다.
 
아빠는 대신에 얻는 것이 있었다.
처녀총각을 잘 이어주고 결혼에 이르면 패물은 아빠에게 와서 하는 것이 약조되어있었다. 아빠가 지원한 것이 약속을 잡도록 중간연락소가 되어주고 전화연결도 해주는 역할이었다.  선보는 날 차 마시는 전용 다방도 마련했는데 외상 달아놓고 마시면 나중에 대불 해 주었다. 주말하루에 너뎃쌍씩 동시에 선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중매할미는 원래부터 바라는 것이 있어서 시작이 되었다. 결혼이 성사되면 결혼예물 금액의 10퍼센트쯤 되는 돈을 현찰로 받아가거나 금으로 받아갔다. 사례로 얻은 금으로 빠진 이를 해 넣고와서 아주 헤벌죽 웃는 것도 보았다. 중매장부 기록을 뒤져서 일년에 한두쌍정도가 결혼에 성사되었던 것을 보면, 진도가 나가고 있었어도 두꺼운 장부에 비해 궁색한 편이었다.
 
중매장부도 관리가 필요했다. 중매장부내용을 추가하거나 변경해야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수 개월이 지나 전화를 하면 그 처자가 시집을 갔다고 하고, 어떤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이세상에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사 중에는 가연의 인연을 맺어주어 고맙다는 인사로 일년 명절에 과일상자를 보내오는 부모도 있었는데 중매 때문에 좋은 일도 생기고 안 좋은 일도 생기고 그랬다.
 
어느 날은 기억에도 생생한데 신부의 시아비가 빈 예물단지를 아빠가게에 들고와서 패댁이를 치고갔다. 신부가 날라리인데다가 신혼 두달째에 결혼패물을 다 싸들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우째, 중간사람은 이리도 저리도 욕을 먹기 쉽상이다.
 
할미가 나이가 너무 들어 무거운 다리를 들고 나물을 싸들고 나올일도 없어져서 그런지 어느날 부터인가 좀 더 젊은 할미가 와서 골짜기의 처녀총각소식을 전해주게 되었다.
후속할미는 애착이 덜 갔는지 몇번보이더니 더는 안왔고 아빠는 중매장부를 책상 한켠에 밀어놓고 보기를 뜸하였다.
어느날은 아빠가 중매장부를 다시 펼쳐놓고 일일이 전화해가며 아직 중매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새로 정리하시는 것을 보았다.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셨다. 인생의 반려자를 찾아주기 위해 장부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애절한 사연들을 일일이 살피시는 것 같았다.
동로할미의 취미로 시작된 중매장부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한동안 아빠의 소일거리가 되어주다가, 아빠의 은퇴 후에 삼촌의 금방으로 전달되었다.
우리 사남매중 결혼한 셋은 모두 아빠의 중매장부가 필요 없었지만 아직 결혼 안한 막내를 보면 장부를 들여다보던 그때의 아빠가 고개를 들어 한마디 하실 것 같다.
막내야, 너 이번 주말에 선 한번 볼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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