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번씩 몇개 안되는 컵들을 씻으며
두고온 식기세척기를 생각합니다.
메모할 종이가 없어 짐을 뒤적거리다가
그많은 A4용지가 있던 책꽂이를 생각합니다.
음악을 듣고 싶은지
큰아이가 CD플레이어를 사자고 했을때
내 오디오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운전하며 다니다 익숙지 않은 거리이름을 보며
낯익은 거리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그 밑으로 흐르던 답답함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살림살이를 하나씩 장만해가면서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미련하게 쌓아두는 것으로
나를 안심시키지는 말자..고 날마다 다짐합니다.
집한채를 통째로 버렸대도 좋을만큼
몇날 몇일을 버리고나서
입을 옷만 챙겨들고 왔으니
이제는 최소한만 지니고 살자고
수없이 다짐합니다.
남이 보기에 어떨까,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지 ..하면서
끝없이 나를 불만스럽게 만들던 기준들도 버리자고 다짐합니다.

내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던 것들,
몇년을 공들여서 겨우 자리잡아가던 일,
10년쯤 후에 그려지는,
적당히 만족해하는 내 모습...
버릴것들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다시 내 것으로 만들수 없다는 생각에
문득문득 두렵기도하고 막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직 누군가 그리워지지 않는걸보면
그동안 좀 지쳐있었구나 싶기도 합니다.
아니면 아직 덜 외로운 때문이겠지요.

아이들만 보며 하루를 온통 보낼 수 있다는건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아직 TV도, 전화도 없이,물론 읽을거리도 한국서 가져온 책 달랑 한권뿐..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기와서 느끼는 가장 큰 만족입니다.

 다시 태어나서 하나씩 배워가는 느낌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들리는 말도, 할줄아는 것도, 눈에 들어오는 글씨도 너무 적습니다.
하지만 비어진 그 자리가 바로 성장할 가능성의 자리가 될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버리려고 애썼습니다.

보이지않을만큼 더디겠지만
한발씩 다시 다가서려합니다.
내 소중한 삶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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