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처음 만난 꽃은 감꽃이다. 태어난 청도에는 감나무가 많아 감잎 순으로 봄 문을 열고 곶감으로 가을 문을 닫았다. 감나무에 달린 노르스름한 감꽃들은 빨갛게 익을 홍시를 약속하는 작은 신호였지만 모두가 끝까지 버텨나지는 못하였다. 하룻밤 비가 내리거나 한자락 세찬 바람이 불면 주르륵 떨어졌다. 그렇지 않더라도 주저리 열린 감꽃은 실한 몇 놈만 남고 거의 떨어져 버렸다. 열매도 실한 것을 붙잡고 싶으니, 다른 꽃들이 떨어져 주어야 한다. 꽃 세계에도 목숨을 건 생존경쟁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눈치채며 자란 셈이다. 그때 내 나이가 다섯 살이다. 나름대로 동네에서는 맹하면서도 눈치 빠른 아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낙화들이 예사로 보일 리가 없다. 사람들은 매달린 꽃이든 바람에 실려 춤을 추며 떨어지는 낙화이든 아니면 땅바닥에서 말라가는 꽃잎이든 모두 좋아하는 모양이다. 변덕이다 하여도 별 상관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나는 내키지 않지만 꽃을 좋아한다는데 싫은 표정을 건넬 수 없다. 꽃가지로 사람을 치지 말라는 점잖은 질책도 있는데 어찌 꽃 잔소리를 할 것인가.


아무튼 나도 꽃을 꽤 좋아하게 되었다. 오감뿐만 아니라 머리며 가슴이며 심지어 배 속에 있는 신장까지 살아있게 한다. 향기가 좋고 색깔도 곱고 씹어보아도 달착지근하여 마냥 속이 벌렁거린다. 만져보면 손가락 지문에 닿는 감촉이 그지없이 부드럽다. 꽃향기가 심장을 가득 채우면 빛깔 좋은 술을 마신 때처럼 흥취가 오른다. 예전부터 술과 꽃과 달과 여인이 어울려야 시가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튼 꽃은 내 봄이 왔음을 확인시켜 주고 가을이면 배를 채우는 신선한 열매를 매단다. 겨울이라 하여도 꽃의 사촌 같은 앙다문 씨방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러니 꽃 모양이 시원찮다고 하더라도 이래저래 귀염을 받는다.


그 꽃은 사람이 품은 꿈을 보여주는 언어라고 할까. 성경에 묘사한 에덴의 동산은 꽃으로 이루어진 화원이다. 동양의 이상향인 무릉도원도 도화가 핀 마을이고 국화가 향기를 토하는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에는 친구와 국화전이나 국화주를 즐긴다. 난 중양절다운 9월 9일을 한번쯤은 그럴듯하게 보내고 싶다.


당연히 모든 것에 꽃이라는 말이 붙는다. 꽃자리, 꽃싸움, 꽃베개, 꽃방석, 심지어 저승도 꽃상여에 실려 꽃무덤 가면 마냥 좋을 것이다. 자식을 낳으면 잘 살라는 희망으로 꽃분이라고 부르거나 화花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고 보니 화라는 말이 참 좋다. 만일 이름에 ‘꽃같이 평화로운 그림처럼 살아라’라는 화花和畵라는 뜻이 담겨있다면 작은 무릉도원이라 하여도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중학교 시절에 지켜본 하얀 배추 꽃밭이 생각나고 사라진 왕국의 돌무덤 주변에 핀 개망초조차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뾰족하게 좋아하는 꽃이 없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새삼스럽게 무엇을 꼬집어 말하기가 쑥스러워진다. 무슨 계절이 좋으냐, 무슨 음식이 좋으냐, 무슨 색깔이 좋으냐를 생각하면 괜히 한쪽에 서는 기분이 들고 풀어 가벼이 놓으려던 마음이 다시 좁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냥 꽃이, 산이, 날씨가 괜찮다고 말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풀과 나무보다는 숨은 해국 같은 꽃에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젠가 먼 사막나라로 몇 번 떠난 적이 있다. 미국의 검붉은 사막도 보았고 하얀 피부 같은 호주의 사막도 걸어보았다. 한번은 중국 북쪽 나라의 사막 가운데에서 맨발로 서 보기도 하였다. 사막이라고 모두 모래밭만 펼쳐진 곳이 아니다. 자갈이 깔리고 커다란 바위가 뒹구는가 하면 애처로운 풀이 나지막하게 펼쳐진 곳도 적지 않다. 또는 동방오색이 어울린 작은 꽃밭을 에워싼 사막도 있다. 그런 곳이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일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섰을 때를 기억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린다. 완만하게 굴곡진 사막과 희디흰 자작나무숲과 앙증스러운 칠색 꽃들로 덮인 푸른 평원을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몽상하면 발바닥까지 간지러워진다. 그리고 오직 “그래, 그랬어”라는 탄식과 한탄과 경탄의 말만 떠오른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꽃이야말로 신의 성스러운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봄날 밤에 아무도 모르게 홀로 솟는 꽃술을 지켜본 기억을 보태면 “그래, 그런 것이야”라는 말이 연이어 나온다.


세상에 가장 신성하고 아름다운 것은 신의 말씀이다. 신의 말씀을 적은 것을 경전이라고 부른다. 불경이 있고 바이블이 있고 이슬람 경전이 있다. 중국의 사서오경도 성현이 남긴 명언집이다. 대학에 다닐 때는 성경을 읽었는데 요즈음에는 불경에 손이 간다. 그래도 마음뿐임이 밝혀지는데 그것은 어쩌다 들판에 나가 크거나 작거나, 성긴 것이나 빽빽하게 찬 것이나 눈앞에 펼쳐진 꽃밭을 대할 때이다.
한참 지켜보다가 살며시 눈을 감으면 그 꽃들이 꼬물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나란히 서서 글자를 만든다. 연이어 단어를, 문장을, 단락을 이어낸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 마음에 안긴다. 흙과 바람과 비와 눈발 이야기가 보태지고 작은집 무릉도원이 그려지고 언젠가 타고 싶은 꽃수레도 떠오른다. 눈이 흐려지고, 힘이 빠지고 손발도 무디어지지만 아직은 머리와 가슴이 쓸 만하다는 처지를 헤아려 꽃으로 말씀하시려는 신의 배려인가 싶어 눈가가 시려진다.


그렇구나.


꽃밭이 책이고 도서관이구나. 꽃밭이 팔만대장경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