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 글> 5,895m Kilimanzaro 산을 오르다 3

글/사진: 한상영
소설가, 평론가,빅토리아문학회 회원

다섯째 날

새벽 잠에서 깨어 시간을 보니 2시 30분 물병의 물은 식어 Sleeping Bag 안이 썰렁하다. 다시 물을 덥혀 오라고 하려면 잠자는 Lucas를 깨워야 한다. 가라 앉았던 위가 다시 쓰리고 아프다. 마지막 등산 시작 시간 8시까지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아무래도 하산을 빨리 하도록 일정을 앞당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등정을 시작하면 5시간 정도 앞당긴다. 그러면 산 정상에 오르는데 6시간 내려오는데 2시간 12시엔 마지막 Camp 인 Horombo Camp 로 출발할 수 있을 테고 내리막 길이니 저녁 전에 도착 할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등산 준비를 마친 다음 소리 질러 Jacob을 깨운다. 몇 번을 소리 지르니 웅성웅성 일행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Jacob에게 내 계획을 설명하고 준비를 시킨다. Jacob 이 내게 두툼한 바지와 얇은 Vinyl 바지를 가져와 입으라고 준다. 처음에 내가 주문한 Warm Jacket 까지 입으니 곰처럼 뚱뚱하니 거동이 불편할 것 같은데 추위는 걱정 없을 듯 싶어 고맙다. 새벽 3시 출발하고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 숨이 차고 발을 떼기가 힘들어 진다. 더구나 위가 뒤틀리며 아파오기 시작하더니 구토증이 난다. 토할 듯 싶어 토악질을 하는데 나오는 건 없고 헛 구역질만 계속하고 만다. 물로 입가심을 하고 물을 1리터 정도 들이 마시니 위가 가라 앉는다. Jacob이 걱정스레 괜찮겠냐고 물어 본다. 이마에 착용한 Headlight 가 발 디딜 앞을 비춰주어 넘어지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간다. 지금은 그래도 옆으로 오르는 길이라 경사가 완만하다. 가다가 약간 만이라도 경사가 급해지면 숨이 차고 발걸음이 더뎌진다. 한 2시간 정도 지나니 Jacob이 이제부터는 옆으로 비스듬히 오르는 게 끝나고 스트레이트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괜찮겠냐고 묻는다. 힘들어 하며 억지로 걷는 것 같은 나를 보고 걱정이 되는가 보다. 더구나 거의 이틀을 먹지 못했으니 남이 보기에 내 상태가 좋게 보일 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더 이상 등산을 포기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무슨 오기일까 아니면 교만일까. 그런데 처음부터 오지 않을지언정 시작한 것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옛날 내가 직업으로 산을 오를 때도 그랬고 등산 모임에서 산을 오를 때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러니 이건 아마 교만일지도 모른다. 2시간 완만한 경사길을 오르니 Kibo봉으로 가는 급경사길을 만난다.

경사도 50도나 60도 되는 오르막길을 곧장 오르지는 못한다. 더구나 경사에 Gravel이 깔려 있어 잘못하면 Gravel에 미끄러져 굴러 떨어질 듯 위험하다. 자연히 길은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한다. 다리에 힘을 꽉 주어야 미끄러지지 않는다. 신경을 곤두 세우고 오르니 더더욱 힘이 든다. 너무 힘이 들어 한 코너를 돌면 앉아버린다. 얼마 안 가 그것도 어렵다. 한 코너 돌면 그대로 누워버린다. Jacob이 누우면 점점 더 오르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나중에는 못 올라갈 거라고 눕지 못하게 한다.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표범은 어떻게 올라 갔을까. 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올라 갔을까.단순히 길을 잃었다고 하기에는 이 길 조건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기였을까 교만이었을까 이렇게 힘든 길을 오르고 있는 나도 오기일까 교만일까. 나나 산 정상에서 얼어 죽었다는 표범이나 무엇이 다른가. 내가 그저 오기로 산 정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라면 표범도 그저 오기였을 것이다. 산 정상을 올랐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교만한 마음에 이렇게 오기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한 걸음 한 걸음 교만…교만…교만…오기…오기…오기…이렇게 중얼거리며 힘든 발을 천천히 떼어 놓는다. 그때 저 밑에서 불 빛이 깜박거리며 흔들린다. 아마도 또 한 팀이 우리를 쫓아 오는가 보다. 그 빛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두런두런 말소리가 난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나를 앞지른다. 보니 한 20살 근처의 여자다. 말소리가 밝은 것을 보니 지친 사람 같지 않다. 얼마간 우리 앞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간격으로 같이 오른다. 한 코너를 지나 나는 지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앉아 숨을 할딱거리며 앉아 있는데 Jacob이 그 팀 가이드와 뭐라고 떠들더니 내게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얼마 안 있어 해가 돋기 시작할 거란다. 사방은 깜깜한데 멀리 구름바다 끝 가장자리를 따라 흰색이 띠를 두르기 시작한다. 가늘게 그어졌던 그 띠가 점점 더 넓어지면서 어둠속에서 붉은 점이 고개를 내민다. 그 점이 조금씩 커지며 붉은 기운을 뻗쳐 나간다.

하얀 원 양쪽으로 곧은 수염 같이 생긴 붉은 기운이 조금씩 길어진다. 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 데 8분이 걸린다고 하니 아마도 8분 후에는 이곳까지 밝아 지겠거니 하고 내가 힘없이 앉아 해돋이 장면을 보고 있는 사이 Jacob이 연신 셧터를 누른다. 날이 밝아온다. 햇빛이 맥없이 주저앉아 있는 나를 환하게 들어내 보이게 한다. 어느 듯 햇볕이 내 몸에 다가와 따스한 입김을 뿜는다. 몇 코너를 더 가는데 이번에는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발걸음은 날 듯이 가볍다. Gravel 을 밀고 내려가는 그들의 발치에서 끊이지 않고 먼지가 피어 오른다. Jacob이 20분만 더 오르면 Kibo 봉 정상에 도착할 거라고 말한다. 경사가 너무 급해 위를 올려다 보아도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용기를 북돋우려고 하는 말인 듯 싶었는데 20분이었는지 30분이었는지 드디어 정상에 오른다. 열명 정도 되는 등산객들이 좁은 능선에 옹기종기 모여서 지친 나를 보며 잘해냈다고 칭찬해준다. 안내판 아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지친 숨을 고르며 이제는 다 왔구나 하고 있는데 Jacob이 이곳은 5685m Gilman’s Point 이고 여기서 능선을 타고 고도 200m를 더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2시간 더 갈거라는데 맥이 주욱 빠진다. 어떻게 더 갈지 막막하다. 여기서 그냥 주저 앉고 싶어진다. 등산객들이 썰물 빠지듯 내려가고 얼마 후 위쪽에서 몇 팀이 내려온다. Jacob이 마시라고 내게 물을 건넨다. 오른 쪽 깍아지른 듯 저 밑에 분화구가 펼쳐져 있는데 물은 없고 모래사막이다. 왼쪽도 깍아지른 듯 저 멀리 Mawenzi 봉우리가 보인다. 좁은 능선을 타고 위를 향한다

5756m Stela Point 를 지나는데 몇 팀이 산 정상 쪽에서 내려와 힘내라는 말을 건네고 내려간다. 조용해진 능선 길 앞 쪽에 약간 몸이 뚱뚱한 한 50대 동양 여인이 양손에 Stick을 짚고 한발 오르고 쉬고 한발 오르고 쉬면서 가이드와 같이 정상을 향해 간다. 지친 내 걸음으로 마지막 산 정상까지 1시간이면 갈 거리가 남았는데 내가 깜깜한 밤에 올라올 때 윗 쪽에 이 여자가 움직이는 불빛을 보지 못했으니 내가 지그재그로 오르기 시작했을 때 이 여자는 이미 Gilman’s Point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거의 3시간을 오를 동안 이 여자는 내가 1시간 정도 움직이는 거리만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내가 이렇게 마지막 기운을 다 짜내며 힘들게 움직이는 데 이 여자는 한 발 한 발 내 발걸음의 3분의 1 속도로 걸으면서도 힘들어하는 표정이 아니다. 내 발걸음도 걷는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고 또 쉬는 횟수도 잦은데 나보다 3분의 1도 안되는 속도로 등산하는 이 여자는 도대체 왜 킬리만자로를 오르려고 한 것일까. 저렇게 오르는 것도 산을 정복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든 오르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지. 한 발 올리고 한참을 쉬고 한발 올릴 때 힘을 쓴 만큼 회복하는 시간을 쉬면서 걷는다면 지치지는 않겠다. 그렇다면 없는 힘을 짜내며 그나마 빨리 오르려는 나보다는 현명한 것이 아닌가. 왠지 나는 오기로 여기까지 온 반면 그녀는 끈기로 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 산을 올라야 하는 것일까. 오기로 오르고 있는 나나 산 정상에서 얼어 죽은 표범 만큼이나 저렇게 강한 인내심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 그녀도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약간은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지나친다

드디어 Kilimanzaro 산 정상 고도 5895m Uhulu Peak 에 도착한다. 나는 우선 앉을 자리를 찾는다. 안내판 밑 바위를 등지고 앉아 다리를 길게 뻗으며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한다. 거의 눕다시피 땅바닥에 앉아서 한동안 숨을 고른다. 돌아보니 나보다 조금 일찍 올라왔던 20대 여자와 나만 있다. 조용하다. 이렇게 산 정상에 올랐는데도 아무런 감흥도 없다. 왜 올라온 거지?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이곳에 내 발자국도 남겼다는 것이 뭐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현실 감각을 상실한 것처럼 멍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다는 이곳에 오르려고 많은 돈을 들인다. 그 사람들을 유혹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까. 자족감? 아니면 영광? 오기? 지쳐서 힘없이 앉아 있는 내 모습에서 무슨 영광이나 오기 같은 것을 찾아 볼 수 있을 건가. 그저 내가 받아 놓은 밥상이니 끝까지 올라 온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는 힐러리 경의 말을 떠 올린다. 그리고 그 말에서 그 분의 솔직하고 겸손한 마음을 읽는다. 지금 나는 자족감도 못 느끼고 영광이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오기에 찬 모습도 아니다. 그래 산이 여기 있어 올라와 본 것일 뿐이다. 처음 여기 오려고 생각했을 때 그저 여기 와 보고 싶다 였을 뿐이다. 사방을 둘러본다. 남쪽 건너편에 깍아 지른 빙벽이 길게 동쪽으로 뻗어 있다. 멀리 북서쪽으로도 빙하가 보인다. 상당한 두께이긴 한데 예전엔 이쪽까지 연결되어 온 산을 둘러 쳐져 있었다니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이다. 오기 전 유튜브에서 본 바로는 2025년이면 지구 온난화로 이 산에 빙하가 남아 있지 않을 거라고 한다. 나라도 증명을 해 놓아야 할 것 같아 사진을 찍는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그녀를 위해 사진을 찍어준다. 그녀에게 부탁해 나도 Jacob과 함께 한 기념사진을 찍는다. 독수리 문양에 POLKA 라고 쓰여진 폴란드 국기를 손으로 받쳐 들고 펄쩍 뛰는 포즈로 멋진 사진을 찍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나는 하산한다. 100m 쯤 왔을까 양손에 Stick을 번갈아 찍으며 50대 동양 여자가 다가온다. 대단한 끈기다. Jacob이 Almost! You got it! Good Job! Good Job! 하며 격려를 해준다. 그녀가 기쁜 표정으로 화답한다.

추위는 어느 정도 가셨고 껴입은 옷이 비둔해 Warm Jacket 과 두꺼운 바지를 벗는다. 털모자까지 벗으니 한결 가뿐하다. Jacob이 물과 과자를 건넨다. 여전히 입맛이 나지 않지만 억지로 먹는다. 내려가는 발 걸음이 가볍다. 중력을 거슬러 몸을 들어 올리며 걷는 것과 몸무게에 의해 저절로 떨어지듯 걷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니. 중력에 의한 우주 질서의 경이를 체감한다. 급경사를 내려 가는데 Gravel을 밀면서 스키타듯 하면 빨리 내려 가면서도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는다고 Jacob 이 말하면서 시범을 보인다. 나도 따라 하면서 뛰듯이 쫓아 내려 간다. 발 밑의 Gravel뿐 아니라 그 밑 바닥에 붙어 있던 흙과 자갈을 파내면서 밀고 내려간다. 먼지가 뿌옇게 피어 오른다. 많은 등산객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내려 갈 텐데 이 산이 온전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끊임없이 인공적으로 바닥을 깍아 내고 그 깍아 낸 바닥을 바람과 우기에 쏟아질 비가 쓸어 내리면 얼마 안 가 이 산은 주저 앉을 것이다. 스키타듯 뛰면서 내려와서 그런지 왕복시간 9시간에 Camp 로 돌아온다. 입은 옷을 벗어 제끼고 물 수건으로 얼굴과 목 가슴을 닦는다. 새옷으로 갈아 입은 후 식사도 거른 채 자리에 눕는다.

여섯째 날

몇 일 째 먹지 못 했는데도 하산하는 발 걸음은 가볍다. Horombo Camp 까지는 완만한 경사로 4시간이면 갈 수 있다고 Jacob 이 말하면서 예정대로면 거기에서 하루 밤을 묵어야 하는데 내 몸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Horombo Camp에서 자동차로 바로 하산할 수 있도록 연락을 했단다. 오늘 중으로 Hotel 로 돌아가게 된다는 생각에 발걸음 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홀가분해 진다. 다음 Camp 가 가까워 지면서 Jacob 이 저들에게 팁을 얼마를 줄거냐고 묻는 바람에 가벼웠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 진다. 계약된 금액의 10%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Alan 에게서 들은 바도 있고 해서 왜 팁을 받는 사람이 요구를 해야 하고 왜 그런 금액이 정해 졌는지 알아 보기 위해 이것 저것 물어 본다. 결국 여행사가 이익을 많이 가지려는 욕심에 고용원의 임금을 여행객들에게 떠넘기는 구조인 것이다. 경쟁이 심해 이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한국 여행사의 경우와는 다르다. 더구나 이곳 여행사들은 계약 금액을 현금으로 받는다. 정부가 세금으로 거둘 수 있는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 걸 어쩌랴. 힘없는 백성은 고달플 수 밖에 없는 것을. Donation 하는 마음으로 다 준다.

Horombo Camp 에 도착해 보니 나 말고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은 2명이 Rescue 차를 기다린다. 불현듯 무언가 커다란 힘이 나를 당긴다. 뒤돌아 본다. 완만한 경사로 넓게 펼쳐져 있는 고원 평원 위에 70만 여 년 긴 시간 모든 고통을 견디어 온 Kilimanzaro 산이 깍이고 깍인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그 위대한 풍상을 뒤로 하고 70년 밖에 살지 않은 왜소한 인간이 지친 몸을 움직여 힘겹게 차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