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영 소설가/문학평론가 빅토리아문학회 회장

“Excuse me, I think this is the reserved seat for me”
조그만 비행기 창을 통해 밖을 내다 보고 있던 민들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말하는 남자를 올려다 본다.
“아!…”
“엇!…”
한 동안 두 남녀는 할 말을 잃고 마주 처다 보기만 한다. 이윽고 민들레가 자리를 옮겨 창 쪽 의자에 옮겨 앉고 남자는 손에 들었던 가방을 천장 선반에 올려 놓고 바깥 쪽 자리에 앉는다. 마음 한 가운데서 부터 뜨거운 것이 온 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낀 민들레가 환한 미소를 띄며 먼저 입을 연다.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김 산씨.”
“그래요. 결국은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고뇌와 환희가 섞인 묘한 표정의 남자가 힘없이 대답한 후 둘은 다시 말없이 한 동안 앞 쪽만 바라본다.
“원수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모양새 같군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민들레. 난 할 말이 많아요.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할 말이 많으면 아무 말이나 하세요. 나는 빚쟁이도 원수도 아니니까. 말을 가려서 할 필요는 없어요.”
“알아요…민들레…당신의 마음을 알아요. 민들레…나는 이런 날이 틀림없이 올 거라고 쭉 생각했어요…”
“…?”
민들레는 들뜬 음성으로 말하는 그의 준수한 용모에 드리워져 있는 한줄기 그늘을 보며 이 사람의 진심이 무얼까 가늠해 본다.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그 동안 김 산 씨는 한국에 있었나 보죠.?”
“꼭 그런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셈이지요.”
“무슨 대답이 그렇게 애매해요 호호.”
“아니 그냥…”
“아. 됐어요…청문회 하는 거 아니니까… 흐흐. 그런데 옛날의 김 산 씨가 아니네요. 그 때는 당당했었는데…”
“당신은 옛날 그대로군요. 나는… 예전처럼…아니…떳떳할 수 없는 거 알아요…”
“나는 지금 빅토리아에 있어요. 부모님이랑 동생 수선화랑 같이 살고 있어요. 우리 부모님이 다 같이 모여 살기를 원해서 그렇게 됐어요. 다행히 나는 졸업하자 마자 government office에 job 을 얻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해요. 빅토리아엔 가 보았나요? 물론 가 보았겠지요. 카나다에서 가장 날씨가 좋고 아름다운 도시 빅토리아엘 안 가 보았을리는 없겠죠.. 그런데 이번에는 어딜 가는 중인가요? 나는 한국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가는 중인데…”
“역시…당신은 행복해 보이는 군요… 그럼 내 생각은 하지 않았겠군요… 나는 한시도 민들레를 잊은 적이 없었는데…”
“…? 이해가 안되는 말을 하는군요. 내게서 말없이 떠난 사람이 누군데…”
“맞아요…나는 비겁한 놈이에요…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안겨 주었는지 알아요. 당신이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도 알아요…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그러나…그러나…내가 당신을 떠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알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어요. 나는 바보였던 거에요…나는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빅토리아를 밴쿠버를 또 몬트리올, 토론토를 매년 헤메고 다녔지요. 이번에도 그렇게 당신을 만나기를 바라면서 비행기를 탔던 거구요. 조금 전 당신과 마주 치면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했어요.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내가 3년동안 당신을 찾아 헤멘 것이 이렇게 보답을 받을 수 있는 거로구나 하고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그런데… 지금은 뭔가 겁이 나고 두려워져요…”
“그랬군요… 그런데 왜 내 곁을 떠났지요? 혹시 당시 산에 대한 내 사랑에 의심이 생겨서 떠난 거 였나요? 아님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었던 건가요?. 아직도 이해는 안되지만 대답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을 추궁하진 않을 테니까. 이 순간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웬지 내 사랑을 다시 찾을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요. 말해봐요? 우리가 함께했던 2년 간 내가 산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는 산이 그걸 모르진 않았을 거라고 다짐하고 다짐하며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살아왔는데…겁이 나고 두렵다고요? 왜요? 내가 마음이 변했을까 봐서요?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산에 대한 내 마음은 그때의 마음으로 온존히 멈춰있었을 뿐이에요. 당신을 본 순간 내 마음에서 잠자고 있던 불씨가 별안간 뜨겁게 타기 시작한 것을 알았지요.”
“분명 당신은 내가 생각하고 믿었던 그대로의 민들레로군요? 고마워요 그리고 정말 미안해요.”
“그럼요 나는 민들레고 당신은 김 산이지요. 우리는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 틀림없어요. 기억해요?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처음 4학년 때 합창단에서, 다음은 대학에서 그리고 오늘 이 비행기에서…아마도 우리는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을 공유하게 되어 있었을 거에요. 당신이 어디에 있던 어디든지 날고 날아 찾아가서 안착하는 민들레처럼…”
“정말 운명같은 만남이네요 우리.”

개나리씨는 민들레와 같이 들어오는 청년을 보는 순간 흠칫 놀란다.
‘아니 저 사람은 …?’
그녀는 손등으로 눈을 씻고 다시 바라본다.
‘저 사람은 분명 ‘백송나무’ 그이가 아닌가?… 어쩐 일이지?… 대체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가 더욱 가까이 온다. 반가운 표정, 미소를 담은 얼굴이 개나리씨를 바라본다.
‘이건 분명 꿈 일거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꿈…꿈이 아니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아!…’
“어머니 잘 다녀왔어요. 그동안 별일 없었던 거지요? 할머니께서도 건강하게 잘 계셔요…이 사람은 전화로 같이 오겠다고 했던 제 남자 친구예요…그런데 어머니 왜 사람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계셔요? 이 사람 무안하게… ”
“…응…그래…알아… 알았다고…”
“안녕하세요? 김 산입니다.”
“…그래요…그래…들어가요…”
민들레는 산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태도가 이상한 것에 고개를 갸웃둥한다. 그들은 가방을 한쪽에 옮겨 놓고 거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 민들레는 차를 준비한다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개나리씨와 마주 앉은 산은 자기를 자꾸 쳐다보는 아주머니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이다.
“…그래…이름이 김 산이라고 했나?”
“네… 그런데 정식 이름은 김 백산입니다.”
“뭐어! 백산?”
부엌에서 찻 물을 끓이고 있던 민들레가 기겁을 하고 놀래 큰소리로 되묻는 어머니가 이상해 돌아본다.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잠시 숨을 들이마신 개나리씨가 다시 묻는다
“그럼 고향은 어디지?”
“태어나기는 서울이지만 고향은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송산리입니다.”
“송산?”
“네. 일명 솔뫼마을이라고 합니다.”
“솔뫼…솔뫼? …쏠뫼!?…무엇! 쏠메에!?.”
“앗!” 와당탕-
어머니가 내 지르는 소리에 놀란 민들레가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떨어뜨림과 동시 잔은 산산이 부서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