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유명인 1> 스캔들의 주인공 Francis Rattenbury

캐나다 탄생 150주년을 맞아 BC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빅토리아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대표적인 장소들은 어디인지 소개한다.

그 첫 번째는 BC주의사당을 건축한 빅토리아의 가장 저명한 건축가 프란시스 래튼버리다. <편집자 주>

프란시스 래튼버리가 없는 빅토리아는 상상하기 힘들다. 빅토리아를 가장 빅토리아 답게 만들어준 건물들에는 어김 없이 그의 자취가 남아있기 때문. 래튼버리의 대표작인 주의사당과 엠프레스 호텔 복도에서는 지금도 그가 유령으로 출몰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한 채 배회하는 것일까.

매일같이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주의사당 건물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 웅장하고 우아한 건축물에 감탄하지만, 이 건물을 지은 건축가가 센세이셔널한 살인사건의 희생자로 당시대 상류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장본인임을 알고 나면 한번 더 놀란다.

1850년대 후반부터 불어 닥친 골드러시와 헛슨베이사의 교역소 건설로 급성장하기 시작한 빅토리아는 일명 버드케이지(Birdcage)라 불리던 식민지 정부청사를 대체할 새 청사를 건설하기로 한다. 이에 1892년 건축공모전이 열렸으며 캐나다와 미국 전역으로부터 응모한 65명중 당선된 사람이 바로 래튼버리다.

래튼버리는 당시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주한지 불과 10개월 된 25세의 청년 건축가로, 5년간의 공사 끝에 1898년 2월 의사당 건물을 완성했다. 건축가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한 후 그는 엠프레스 호텔을 비롯해 구 마리타임 뮤지엄, 크리스탈 가든, 아이리쉬 타임스 건물 등 빅토리아 곳곳은 물론 밴쿠버 아트갤러리 등 BC주에 수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프란시스와 아내 알마 래튼버리<사진출처: youtube>

건축가로서 승승장구하며 상류사회에 진입, 장교의 딸과 결혼해 오크베이의 바닷가 저택에서 부와 명예를 한껏 누리며 살던 그는, 그러나 57세에 알마 파켄햄이라는 27세 이혼녀와의 애정행각으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유부남과 이혼녀의 떠들썩한 염문으로 보수적인 빅토리아 상류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더이상 건축가로서의 커리어도 지키지 못하자 결혼한 두 사람은 영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빛나던 명성도 재산도 사라지고, 새 아내와도 사이가 멀어진 채 술에 쩔어 비참한 노후를 보내던 래튼버리는 1935년 바닷가 마을 자택 거실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된 후 사망하고 만다.

처음에 범행을 자백했던 알마는 법정에서 이를 부인했으며, 부부의 자동차 기사이자 그녀의 새 애인이었던 17세 소년 조지 스토너가 코캐 인에 취해 범행을 했다는 자백을 하고 살인죄로 교수형을 받는다. 애인이 교수형을 판결받자, 알마는 며칠 후 자신의 심장을 찌른 후 에이번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결국 조지는 누명을 썼다는 주민들의 탄원이 받아들여져 7년 형으로 감형되는 것으로 이 비극적 사건은 막을 내린다.

조지는 석방된 후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래튼버리가 살해당한 바닷가 마을에서 남은 생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끈질긴 미디어의 추적에도 사건에 대해 끝내 입을 다물었으나 죽기 전에 두 사람이 공범이었음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살인사건의 정확한 진실이 무엇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지금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불륜, 마약, 배신, 살인 등 센세이셔널한 스토리로 영국과 빅토리아 양쪽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이 사건은 책과 연극, TV 드라마, 심지어는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다.

빅토리아에서 건축가로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냈던 때가 그리워서 일까, 아니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자신의 죽음이 억울해서 일까. 래튼버리는 자신의 꿈이 서린 건물에서 떠나지 못한 채 유령이 되어 지금도 그곳을 배회하고 있다.